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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P

작성자 사진: 변승현  변승현






만약에 아주 만약에 말이야 지구가 과도로 자른 사과처럼 정확하게 반으로 갈린다면 동시에 너의 가장 소중한 절반을 앗아간다면 어떨 것 같아 어느날 아침 일어나서 창문 밖을 보는데 바다도 아닌 도시 한복판에 수평선이 보이는 거야 대한민국 서울부터 우루과이를 정확히 가로지르는 절단선과 함께 마치 낚싯줄로 자른 듯 깔끔하게 떨어져 나간다면 가족이나 반려동물과 흩어진 사람도 있지만 전부 반대편 지구에 있어서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집계되지 않는 거지 종전과 평화협정이 줄지어 보고되고 수백, 수십 년에 걸쳐 이루어진 갈등과 이해관계도 전부 사라져 게다가 중력이 붕괴하고 기후변화가 오고 운석 충돌로 인해 수많은 생명체가 죽지도 않는다면 정말 견딜 만한 재앙이 온다면 마치 지구가 처음부터 반쪽짜리 행성으로 존재했었던 것처럼 움직인다면 어떨 것 같아 그러니까 여전히 달은 공전하고 양쪽 지구의 틈 사이로 도는 인공위성이 통신을 이어가고 지각층과 해양이 갈라지며 생기는 대자연 적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 거지 학계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법칙과 지구의 구조를 넘어선 상황이 발생했다며 혼란스러워하고 종교계에선 우매한 우리를 향한 하늘의 채찍질이라 말하지만 그런데 만약에 이게 그 어떠한 과학적 이유가 아닌 단지 신들의 부부싸움이라면 끈적한 사랑의 힘만이 지구를 자석처럼 붙일 수 있다면 어떨 것 같아 그리고 만약에 내가 네 절반이라면 그래서 세수하던 중 반대편 지구로 날아갈 뻔했다면 그러다 간신히 배수관을 붙잡아 하반신만 날아갔다면 내 전화를 받고 단숨에 달려올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내 하반신을 찾기 위해 날 업은 채 지구 끝에 갈 수 있겠어 공원 잔디에 누워 혼란스러운 거리와 반대편 지구를 바라보면서 그제야 서로가 서로의 반쪽이었단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그리고 우리가 진실로 사랑을 깨닫게 된 순간 갑자기 온 우주가 태동하고 몸이 점점 떠오른다면 그리고 우리가 전력을 다해 할 수 있는 게 사랑밖에 없다면 넌 36만 3,396km 멀리서 가까워져 가는 지구보다도 더 빨리 운석이 충돌하듯 날 향해 날아올 수 있겠어

     

그냥 좀

닥쳐줄 순 없겠니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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