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인이 송사리가 되었습니다. 에어컨 한 대 없는 오래된 빌라. 가만히만 있어도 불쾌한 땀이 흐르는 어는 여름날 생긴 일 이었습니다. 바닥에서 더운물을 튀기며 파닥거리는 애인에, 저는 서둘러 방금까지 그가 마시던 물컵에 그를 담가 주었습니다. 그는 제게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듯 계속해서 컵 안을 회전하고 있었지만, 인간인 제가 알아들을 길은 만무했습니다. 저는 그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얼굴을 들이밀었습니다. 그는 그가 사람일 때의 머리색과 같은, 검은색 등을 가진 송사리가 되어있었습니다. 배의 비늘은 그보다 밝은 회갈빛 이었고 그 위엔 격자 무늬가 정방향으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는 제 애인이 분명했습니다.
사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원래부터 그가 송사리였단 사실이 당연했다는 듯 이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습니다. 비록 값싼 플라스틱이었지만 그를 위해 물 컵보다 더 큰 수조도 샀습니다. 애인 2호라는 이름도 지어주었습니다. 올해로 같이 산 지 이 년이 넘어가지만 서로의 이름을 물은 적이 없었거든요. 이맘때쯤 전 2호의 비늘 뒷부분에 작은 반점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는데, 목뒤 점이 있던 그가 떠올라 반나절을 수조만 바라본 적도 있었습니다. 비록 2호의 흐리멍덩한 눈이 저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사실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무튼, 우린 그럭저럭 지낼 만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여름밤의 문제점은 누군가와 같이 누워 이야기하고 싶어진다는 것입니다. 평소 그의 잡다한 이야기를 듣다 지쳐 잠에 들곤 했던 저는, 수조를 제 침대 옆으로 옮겨 그에게 생각나는 대로 아무 이야기나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외출을 병적으로 삼갔기에. 대부분이 인터넷에서 본 글들이었지만, 크게 문제 될 건 없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을 혼자 말하던 전, 문득 2호에게 일방적으로 애정을 갈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송사리가 된 그에겐 더 이상 내 사랑을 섹스로 증명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수조에 손을 넣어 2호를 애무하려 했지만, 그는 겁을 먹은 듯 저를 피해 이리저리 헤엄쳐 도망쳤기에, 이것 또한 얼마 안 가 그르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에 와 말하지만, 그날은 제가 그와 만난 이후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낀 날이었습니다. 누구라도 상관없었던 저지만, 제게 그 누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은 애인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제가 술을 마실 수 있었다면 밤새 울었을 것입니다.
제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2호는 그다음 날부터 제 말에 오른쪽으로 헤엄치기도, 몸체를 틀어 왼쪽으로 헤엄치기도 했습니다. 외로웠던 저는 이걸 나름 긍정과 부정의 답으로 나누어 그와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전 그와 저녁 식사도, 새로 주문한 32인치 티비의 위치도 논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밥을 먹을 때면 그도 제가 준 육골 사료를 녹여 먹었고, 제가 수조를 껴안은 채 잠이 들 때면 그도 눈을 감고 바닥에 가라앉았습니다. 우린 영락없는 연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다 8월의 끝 무렵, 그는 물이 더워졌는지 그만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수조를 산 지 일주일도 채 안 된 날 이었습니다. 여느 민물고기와 같은 죽음. 슬픔은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만, 저는 죽어버린 2호를 어딘가에 묻어주어야 할지, 다른 생선처럼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지 같은 현실적인 고민에 마주쳤습니다. 그를 버리기엔 왜인지 모를 죄책감이 들어 망설여졌고, 반대로 그를 묻으려면 밖으로 나가야만 했는데, 제겐 아직 그럴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2호를 수조에서 꺼내 식탁 위 접시에 올려두었습니다. 송사리가 되고 처음으로 만져본 그의 살결은 마치 개구리, 물에 불린 멸치, 날 것의 무언가처럼 좋진 못했습니다만. 그런 사실을 제하곤 여전히 2호였습니다. 저는 이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평소처럼 그의 앞에서 밥을 먹었고 평소처럼 껴안은 채 누웠습니다. 여전히 사랑스러운 나의 애인. 저는 조그마해진 그를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부패한 그의 살 사이로 날파리 떼들이 모여들어 알을 낳고 있었습니다. 전 점점 썩어 곪아가는 2호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 아아
저는 울고 싶어졌습니다.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순간 내가 그이고 그가 나인 것 같다는 착각이 들어 혼란스러웠어요. 전 그와 하나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그를 제 안에 밀어 넣는 한이 있어도 말이죠. 저, 혹시 아직도 제 몸에서 비린내가 나는지, 한 번만 확인해 주시겠어요? 아무리 씻어도 좀체 지워지질 않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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