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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변승현

박현욱, 아내가 결혼했다

최종 수정일: 2024년 10월 31일






  시크릿 토킹이라고 정신과 의사들끼리 모여 랜선 상담해 주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올라오는 사연들엔 평생 한 번 마주칠까 한 미친놈들이 전부 모여있는데 (불륜, 사이비, 가정폭력, 사이코패스 등등) 3년 전 이 채널에서 폴리아모리에 대해 다룬 영상 또한 있더라.


  폴리아모리. '많음’을 뜻하는 그리스어 ‘폴리’(poly)와 ‘사랑’을 뜻하는 라틴어 ‘아모르’(amor)의 합성어로, 사랑하는 사람의 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 다자연애주의자를 뜻하는 말이다. 예시론 부부의 세계 유태오와 와이 우먼 킬의 테일러가 그에 해당한다고 한다. (사랑에빠진게죄는아니잖아!) 대충 사연은 이렇다. 어느 날 여자친구가 자신이 폴리아모리인 것 같다, 라고 고백을 해온다. 상대는 같은 동아리의 친한 남사친. 사연자를 사랑하지만 그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생겼다며, 그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떠나주겠다 울면서 말하는데, 화가 나는 것과 별개로 여전히 애인을 사랑해 괴롭다는 게 주 내용이었다. 한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구속에서 벗어나 이성에게 느끼는 끌림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해 달란 뜻인 셈이다. 이게 바람을 허락해 달란 얘기와 무엇이 다른가? 허 참.


  이를 들은 영상 속 의사들은 전체보다 개개인의 중요성이 강조된 사회이기에 나타난 하나의 양상으로, 관계란 존재가 이전보다 경미해진데다 충동 억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 탓이라 말했다. 잃는 것이 자유이고, 감당해야 할 것이 책임인데도 불구, 누리고만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런 불완전한 관계에서 누구에게 과연 어떤 책임을 느낄 수 있겠는가. 사람이니까 유혹에 휩싸이는 건 당연할 수 있지만 상식적인 관계는 아니므로 감내해야 한다는 게 최종 의견이었다.


  그 얘기를 하며 예시로 든 영화 중 하나가 바로 글루미 선데이였다. 남자주인공인 자보는 레스토랑 오너, 여자 주인공인 일로나는 그 홀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 나오는데, 둘의 사랑의 깊어질 무렵, 동시에 일로나의 마음이 같이 공연하는 안드라스에게도 향하게 된다. 그런 안드라스에게 자보는 “너를 가질 수 없다면 반이라도 갖겠어.”라는 희대의 명대사를 남기며 ... 하루는 자보 집에서 자고 다음 날은 안드라스 집에서 자는 대환장 다자연애를 이어간다.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향후 일로나를 사랑하는 독일군 대령이 또 나온다.)


  그리고 또 다른 예시가 바로 이 아내가 결혼했다였다. 하고 싶으면 아무나하고 자고, 결혼하고 싶다면 이미 남편이 있어도 식을 올리는, 보편적인 내 기준에서 모럴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여성인 주인아. 그리고 그런 그녀를 너무도 사랑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다. 사실 오며 가며 인사만 하던 남직원이 뒤에서 음침하게 신붓감 점수를 매긴다고 생각하면 (그녀는 점수가 올라가는 타입이었다) 단전에서부터 빡침이 올라오는데, 이런 걸림돌들이 정말 사소하게 느껴질 만큼 문장이 말도 안 됐다. 이야기 진행이 순식간이라 마치 드라마를 읽는 것 같았다.


  비유하자면 디시에서 말발로 유명한 네임드가 트페미랑 연애 썰 푼 걸 전문 편집자가 퇴고한 느낌이라 할까…. 덕훈은 본인이 고전적 마초이즘에 약간의 가부장적 태도마저 가진 진짜 남자!라는 걸 여과 없이 드러내지만 인아는 ‘어디 여자가….’라고 한마디 하면 여자가 뭐 어때서? 란 이니시로 페이지 반가량을 훈수 두는 인물이기에…. 별 소용이 없다. 이 부부의 싸움이란 해 봤자 결국 인아가 이기는 논쟁일 뿐이다. 어쩌다 덕훈이 우세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해도 승리는 항상 인아의 몫인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인아가 아니다. 그 외에 소설을 읽을 때 가장 두려운 순간이 모든 문제가 해결됐는데 아직 200쪽이 남아있는 것과, 해결된 게 하나도 없는데 20쪽 남아있을 때라는 말이 있지 않나, 아내가 결혼했다는 확신의 후자였다.


  “그렇지 않아. 당신이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돼. 조금만. 애정이 식지 않는 한 내가 뭘 어떻게 하든 존중해 주겠다고 했잖아. 내가 바람을 피운다 해도 애정이 식은 게 아니라면 당신은 나랑 같이 살 거잖아. 지금이 바로 그런 경우야.”


  아내가 결혼했다는 결말이 두 개이다. 영화에서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아가 둘의 곁을 떠나고 모든 오해가 풀린 뒤 다 같이 스페인에 가 축구 경기를 본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면, 소설에선 인아와 덕훈, 재경이 폴리안드리가 모여 사는 마을이 있는 뉴질랜드로 떠나게 된다. 그래서 이게 결말이야? 진짜 뉴질랜드로 간다고? 부모 형제는 어떡하고? 직장은? 연고도 없을 텐데. 친구들은 어떻게 할 거며, 다른 나라 언어는 할 수 있는지, 집단혼의 형태로 가족을 유지하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뉴질랜드에 간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건지. 말이 좋아서 이민이지 이게 도망하고 다를 게 있나 실었다. 이런 고민들이 해결되지도 않은 채 책은 여전히 투닥이는 세 사람으로 끝난다 (...) 소재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결말이었겠지만, 아쉬움은 지울 수 없었다.

  흠결 없는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사람은 몇 없다. 마라도나는 친자 확인 소송으로 곤욕을 치러야 했고(마라도나는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었으나 확인 결과 친아들로 판명되었다), 여자를 끼고 당당하게 호텔을 드나들곤 했던 마테우스의 여성 편력은 유명하며, 호나우두는 유명 매춘 조직의 고객 리스트에 오르는 등 조금 뜸하다 싶으면 여지없이 스캔들을 일으켰다. 어디 그뿐인가, 덕훈의 할아버지는 처첩을 거느리고 살아 할머니가 평생을 눈물로 보내게 했고, 아버지는 그 피를 물려받은 타고난 바람둥이로 덕훈의 어머니가 평생 밖으로 도는 남편의 외도를 견뎌내게 만들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란 누나들 또한 이혼을 반복했으며 마찬가지로 친구인 병수 부부도 서로의 불륜으로 이혼했다 재결합하길 반복했다. 그러니 이것도 다양한 가족 형태의 일부일 뿐이라면 더 이상 말 얹는 게 애매하겠지만 (아니 근데).


  사실 법적 결혼 형태로 일부일처제가 규정된 데에 가장 큰 이유는 구조의 안정성이다. 명확한 부부관계로 사회 질서를 유지시키고 자녀 양육과 교육의 일관성을 주어 건강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단혼의 역할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사회가 같은 결혼 형태를 채택할 필요는 없다. 다양성은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일부일처제가 아닌 형태의 결혼을 배우자에게 반강제로 납득시키는 건 사랑을 인질 삼아 행하는 권력남용이며 정서적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내겐 이 폴리아모리란 존재가 그냥 포기할 줄 모르는 이기적 성향으로, 난혼도 집단혼도 그저 섹스광의 판타지로밖에 안 보였던 것이다.


동시에 두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누구나 가능하다. 하지만 a를 좋아하던 중 b가 좋아졌대서 이전의 감정이 소멸되는 건 아니지 않나. 보통의 지성인이라면 a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b와 다시 연인이 되기까지의 감정을 천천히 쌓아 올려야 한다. 그게 상대방을 위한 예의이다. 그러니 결정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러분 밥 잘 챙겨 드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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