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김애란, 이물감

작성자 사진: 변승현  변승현

최종 수정일: 2024년 10월 31일






  언팔이 곧 손절이 되는 세상. MZ 젊은이들은 전화번호가 아닌 인스타 주소를 교환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 요즘은 전화보다 카톡을, 카톡보다 디엠을 선호하니 무리도 아니다. 우리 엄마의 연락처가 아직도 업데이트되는 거로 봐선 아마 내 세대에만 해당하는 얘긴가 보다.

     

  그럼,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 인스타는 어떤 의미일까. 은퇴 전 마지막일 지금의 직장. 지인들과의 연락은 끊긴 지 오래며 주기적으로 만나던 동창들도 흩어진, 새로운 만남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기성세대 말이다. 우리에게 인스타가 선택이라면 그들에겐 잘 살고 있음을 보여줄 마지막 수단일지도 모른다. 소설 속 기태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김애란의 이물감은 SNS의 고질적 문제. 제단과 편집으로 생겨난 현실과의 괴리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사회적으로 나름 성공한 주인공 기태는 청결한 옷을 입고, 타인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젊은 세대를 지지하고, 주변에 해가 되지 않는 산뜻한 중년이 꿈이었지만, 다른 젊은 직원들의 ‘어차피 우린 열심히 일해도 부모보다 못 살 세대’라는 말에 ‘그 부모라도 좀 가져봤으면 하네요’ 하면서 분위기를 흐리는 이른바 ‘꼰대’가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다리 마지막 칸에 기적적으로 오른 제 눈엔, 요즘 입사한 친구들은 어느 정도 한국의 정교한 계급 필터를 거친 이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을 대개 자신이 쥐고 태어난 걸 과소평가하며, 계급성은 지우고 나이라는 약자성만 내세운 채 윗세대에게 자주 적의를 보이듯 비친다. 요즘 젊은 놈들이 무슨 고생을 했다고. 나 때는 더했는데 말이지. 기태는 소외됨을 인식조차 못 하는 전형적인 우리 사회 중년의 모습이다.

     

  ‘제가 주제넘게 껴들어 죄송한데요, 제 부모님은 지금도 시골에서 농사지으시거든요. 중요한 건 과장님이 말씀하신 그 ‘부모’를 둔 친구들도, 그렇지 않은 청년들도 다 똑같이 어려움을 겪는 데 있는 것 같아요.’

     

  한 후배 행원의 소신 있는 의견에도, 기태는 자신의 말이 젊은 친구들의 노력을 치하하는 실언이라 생각지 않는다. 뒤이어 분위기를 풀기 위해 박 과장이 한 말에도, 후배들 앞에서 언제나 ‘좋은 선배’이길 자처한다며 비아냥대기까지 한다. 기태는 그저 진실을 말한 자신을 후회하며 다시는 대화에 끼지 못하겠구나. 씁쓸해할 뿐이다. 아마 기태는 백날 설명하려 한들 생각을 바꾸지도, 그 젊은 세대를 이해하려 들지도 않을 것이다. 자신만의 신념에 사로잡혀 목석처럼 고집부리는 꼰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기성세대의 특성 중 하나인 권위주의와 관련되어 있다.

권위주의(Authoritarianism). 권위를 갖는 것이나 권위 그 자체에 의혹을 갖는 것. 혹은 반항하는 것은 모독이며 죄악이라고 하는 사고방식 또는 행동양식을 말하는 사회학 용어로, 향후 MZ세대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 및 협업 회피와 정적 관계를 만들어 내는 개념 중 하나이다.

     

  기존 연구에서 언급한 MZ세대 특성은 개인의 만족과 여가를 중요하게 여기고, 일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조직을 위해 희생하기보다는 자신의 행복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양상을 포함한다. 또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선호하고 공정성에 민감하며 자신이 원하는 가치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 소비활동을 하거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자기를 표현하는 것 역시 MZ세대의 주된 특성으로 거론되곤 한다.

     

  반면, 기성세대는 공동체를 중시하고, 조직에 대한 충성심, 서열 의식, 권위주의가 높다는 특성이 있다 (박재흥, 2010; 설진선, 김수연, 2020; 최은희, 2021).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빠른 성장을 목표로 살았던 기성세대와 달리 MZ세대는 경제적인 풍요로움, 고도로 발달된 정보화 및 높은 자율화를 경험하면서 기성세대와는 구분되는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예지은, 진현, 2009). 박재흥(2010)은 기성세대의 대표적인 특성을 성장주의, 집단주의, 권위주의, MZ세대의 특성을 소비주의, 개인주의, 탈권위주의라고 언급하며 두 세대의 특성 차이를 강조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결과가 사실, 그들의 권위주의적 사고에 의해 세대에 독특하게 도드라지는 특성으로 인식되었다는 최근 논문이 등장했다. (임예지 외 3인, 2023) 위는 젊은 세대뿐만이 아니라 기성세대에도 중요한 요인이며 평등 추구, 다양성 존중과 같은 특성은 사회적으로 올바른 특성이기에 긍정적인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위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지 세대의 두드러지는 특성이라 보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이다.

     

  소설 속 섹스 파트너인 지수가 입사 초에 제가 가장 싫어하던 남자 후배에게 승진을 밀렸다며, 자신은 아무리 관리해도 평판이 비싸지질 않는다는 일종의 푸념에 ‘너가 이해해’라며 사족 하나 공감하나 붙이지 않는 말을 하는 장면이 그 예시이다. 기태 또한 남성이라는 이점을 통해 폐쇄적 권력구조의 영향을 받아 지금 그 자리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쥐고 태어난 걸 과소평가하며, 계급성은 지우고 나이라는 약자성만 내세운 채 타인에 자주 적의를 보이는 기태. 그가 이야기했던 MZ세대의 개인주의와 자기중심적인 면모는 기태에게 또한 드러나 보인다.

     

  물론 기성세대의 권위주의가 높다고 해 MZ세대의 특성을 더 독특하게 지각하지는 않는다(위는 직장이라는 특수한 영역에서 적용되는 의견이지 전체를 대변하진 않는다). 하지만 MZ세대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과 비호의적인 정서가 기성세대가 MZ세대를 차별하거나 교류를 회피하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각별히 주의해야 하는 건 확실하다.

     

  때문인지, 기태의 목 안 이물질은 미처 숨기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권위주의적 의식과 관념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되새김질과 입냄새는 타인으로 하여금 불쾌감을 느끼게 하지만 알아채고 난 뒤엔 이미 들킨 지 오래니 말이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희주의 일상을 엿본 기태의 모습은 소설을 관통하는 주요 장면 중 하나이다. 편집되고 연출된 이미지와 현실의 간극은 너무도 컸다, 실제로 희주의 요가학원은 SNS 속 사진 분위기와 달리 승강기도 없고 외부엔 실외기가 스피커마냥 붙어있는 볼품없는 모습이었지 않나. 물론 불행을 재단해선 문제가 되겠지만. 희주또한 보여지는 모습에 너무나 신경을 썼던 듯하다. 마치 잘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지 못해 안달이라도 난 듯 말이다. 역시나 기태는 그런 희주를 이해하려 들지 않은 채 화환까지 보내는 무례를 범한다. 그에 대한 결과는 계정 잠금. 소통의 여지가 없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요즘의 방식이다.

     

  “만일 조금이라도 호감이 들면 사람 입을 보래요. 저 사람 지금껏 살면서 뭘 얼마나 많이 먹었을까. 나이를 추상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닌, 그 안에 상하고 쳐졌을 내장을 생각하라고요.”

     

  자신의 일상을 들어내는데 가감 없는 완벽한 차 대표 (물론 그 안에 어떤 실체를 가지고 있을진 아무도 모르겠지만). 기태의 눈에 라스푸틴처럼 보이는, 차 대표는 꼭 그런 인물로 묘사된다. 그런 그에게 내장의 관상을 들켜버린 기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꼰대 같은 행동으로 소설을 마무리한다. 차 대표가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에 맞춰, 인상을 찌푸리고, 접시 위에 티슈를 던진 채 말이다.

     

  기태를 스쳐 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는 어쩌면 정말 이물질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감정에 요동을 주고, 대화의 흐름을 망치는 고지식한 중년. 비로소 바닥에 게워진 기태는 아마 고립된 채 평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되려 기태가 이들보다 능동적이었기에, 인스타그램 속 재단된 모습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 할 정도로 적극적인 사람이었기에 이런 결말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란 감상 또한 들었다.

     

  언젠가 우리들이 수많은 기태로 변하게 된다면, 도태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향후 기성세대로 바뀔 MZ세대와 새로운 알파 세대와의 갈등이 존재하지 않을 거라 확신할 수 있을까. 마흔이 되기 전 숙제가 또 하나 추가되었다.




참고 문헌

김애란 [이물감] (<자음과 모음>, 2020년 여름호)

기성세대의 권위주의와 MZ세대에 대한 부정적 태도 2023. 임예지 (고려대학교), 윤가영 (고려대학교), 김혜민 (고려대학교), 박선웅 (고려대학교)

한국 사회 가족가치관의 지형: 기성세대와 청년세대별 유형과 특성을 중심으로 2024. 김정진 (이화여자대학교), 최유정 (이화여자대학교), 최샛별 (이화여자대학교)

댓글 1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1 Comment


변승현
변승현
Sep 05, 2024

꺅!

Like
bottom of page